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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마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는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가장 강했던 것은 초등학생 (그것도 저학년) 시절이었고, 중학생 이후로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옅어져갔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그만큼 모든 경험이 강렬했기 때문일까?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에 대한 반감도 강렬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 일순위는 동네 만화가게, 이순위는 동화책이었다.

10원에 세 권 읽을 수 있던 시절, 내 용돈은 대부분 만화가게 주인에게 바쳐졌다.
임창, 윤승운, 길창덕, 이향원.
아직도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저녁 먹을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만화가게로 나를 찾으러 오셨다.
아프다고 조퇴하고서는 대낮부터 만화가게로 향한 적도 있었고,
만화보다가 피아노 레슨에 늦거나 아예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로부터 회초리를 맞고 반성문을 써야 했다.
반성문은 그날 본 만화의 내용을 다 적는 것이었고, 다 적어야만 잘 수 있었는데,
내용이 다 생각나지 않아 본의아닌 창작도 하며, 울면서 반성문을 쓰다가 자정을 넘긴 적도 많았다.

그것은 아버지 나름의 글쓰기 훈련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나들이를 하고 오면 반드시 감상문을 써야 했는데, 나는 그것이 싫어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아무튼 그 때는 어른만 되면 아버지의 간섭없이 내가 하고픈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때는 물론 어른이 되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훨씬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어른이란 무엇일까?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어도 나는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일까?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어른이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지 못할 때 나는 아직 어른이기는 커녕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지론인데
아이에게는 이것저것 강요하는 나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물론 교육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어떤 원칙은 강력한 방법으로 주지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오늘도 작은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
늘 반복되는 문제 때문이다.

아이가 해야할 일 중 중요한 것은 자기 방 정리와 숙제, 매일 하는 몇 가지 공부, 그리고 요즘은 기말고사 준비다.
오늘은 이 모든 것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아빠는 오늘 너무 실망했어. 그래서 당분간 너와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이 말을 남기고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를 뒤로하고 저녁시간에 연구실로 나와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잠들었고, 아내는 말이 없다.

작은아이는 분명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기분이 좋으면 열심히 했다가 하기 싫으면 안한다.
그림그리고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큰아이 역시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저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고, 음악, 운동, 친구와 노는 것에 더 열심이다.

나와 아내는 부모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별로 듣지 않고 적당히 알아서 한 편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보려하지 않고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든다.

세상은 분명 내가 자라던 시절 보다는 더 팍팍해진 것 같고, 최소한 남에게 손벌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그에 걸맞는 생활도구로서의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크게 보아 그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인 것이다.

그렇게 공부한 나는 아이에게 본이 될 만한 어른이 되었나?
내 마음도 다스리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평소에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내 뜻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사실 나는 아이에게 실망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실망한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공부부터 다시 해야 할까 보다.

어쩌면 나는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벼슬없이 살다가 죽은 사람은 평생 공부만 하던 사람이라고 해서 신위에 "학생부군신위 아무개"라고 적었다는데,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하고 살다가 죽으면 무어라고 적어야 할까.

# by 찾는이 | 2008/06/26 03:20 | 아이생각 | 트랙백 | 덧글(3)
자연의 이용

귀국한 지 4년.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는 아직 국어시험에 다소 약하다.
독서량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음악에 더 빠져 있으니 보충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엊그제, 아이가 물었다.

"아빠,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는 게 무슨 뜻이야?"

아이가 질문하면 나는 바로 답을 주지 않고 한 번 쯤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한다.
힌트를 주기도 한다.

"네 생각에는 무슨 뜻일 것 같아?"

"음...자연의...이용?"

나와 아내는 뒤집어졌다.

"번개가 치는 시간이 짧아, 길어?"

"짧아."

"그러면 그 짧은 시간에 번개치는 곳에 뛰어가서 콩을 구워 먹으려면 얼마나 바쁘겠니? 실제로는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음. 맞아."

"그러니까 그 말은, 아주 짧은 시간에 급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야."

다시 생각해보니, 과학이 더 발전하면 번갯불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을 때가 올 수도 있고, 그때가 되면 콩을 구워먹는 것은 물론 다른 일도 많이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번개가 엄청난 양의 전기라는 사실을 배운 뒤, 나는 그 전기를 저장해놓았다가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발명과 발견은 엉뚱한 발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엉뚱한 답변을 듣고 나는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적의 호기심을 잃고 상식이라는 틀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by 찾는이 | 2008/06/19 17:22 | 아이생각 | 트랙백 | 덧글(4)
참을 수 없을 만큼...

오랜만에 가슴으로 읽히는 시집을 대했다. 황동규의 [꽃의 고요]. 나온 지 이 년이 되었지만 나는 그의 시에 모종의 선입견이 있어서 읽지 않았었다. 예전 그의 시에서는 어떤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가 스무 살 무렵에 쓴 ‘즐거운 편지’에서부터 보여준 조숙한 지성의 이면이라고 느꼈다. 어려서부터 너무 똑똑했기에 그것이 오히려 어느 지점 이후로는 걸림돌이 된 시인. 가슴보다는 머리에 더 기울어 있는 시. 마치 내 가슴에 다가오다가 5센티미터 앞에서 멈추어 선 듯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다가왔다. 적지 않은 세월을 격조하고 다시 집어든 그의 시는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감당하고 있었고, 이제는 내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 온기를 내 몸 속에 전달었다.

 

“사진은 계속 웃고 있더구나, 이 드러낸 채.”

 

“계속”이란 단어가 절묘하다. 영정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 그 사진이 놓인 자리는 그의 삶이 끝났음을 의미하지만 “계속” 웃는다는 표현으로 인해 그 단절감에 혼란이 온다.

 

부고와 함께 실린 사진에서 아버지는 유난히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사진으로 인해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빈소를 나서는 시인을 이팝나무가 가로막는다. 하얀 밥풀 같은 꽃을 활짝 피운 채.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 더 먹고 가라!”

 

“이거였니,

감각들이 온몸에서 썰물처럼 빠질 때

네 마지막으로 느끼고 본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동체(胴體) 부듯 욕정이 치밀었다.”

 

이 구절 역시 절묘하다. 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썰물로 그려진 다음 순간, 그것은 다시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가속도를 내다가 땅에서 바퀴를 떼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과 겹쳐지며, 그것이 다시 지상에서의 생의 강렬한 욕구와 겹쳐지는 구절이다.

 

시의 첫머리에서 죽음은 “그동안 지탱해준 내장 더 애먹이지 말고 / 예순 몇 해 같이 살아준 몸의 진 더 빼지 말고 / 슬쩍” 내빼는 것으로, 즉 육체의 에너지를 더 이상 소진하지 않고 물러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한 죽음을 목도한 순간,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엔진의 회전수를 높이다가 마침내 지상에서 허공으로 도약하듯 강렬한 “욕정”을 느낀다는 것은, 너무나 그럴 듯한 역설이다.

 

내가 이만큼 참을 수 없는 삶의 “욕정”을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이팝나무에 가득 핀 꽃, 그것도 밥풀 모양의 꽃이 주는 생의 육체성과, 시들어가는 육체로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간 혼의 정신성은 여기서 교차되며 합쳐진다. 이렇게 되면 죽는다는 것은 그저 이편에서 저편으로, 꽃이 가득 피어 “환한 어둑발” 속으로 한 걸음 내어딛는 것이 된다.

 

황동규 시인, 그는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나는 이 경지를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황동규, "참을 수 없을 만큼"
# by 찾는이 | 2008/02/19 14:39 | 영화/책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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